방현희 소설가왜 ‘소설’이라는 장르가 필요할까

왜 ‘소설’이라는 장르가 필요할까


방금 어떤 포스팅을 보고 소설이 왜 필요하며 소설을 왜 쓰고 읽는지, 말하고 싶어졌다.  

우리 사회에서 흔히 보는 일로, 정치인으로 입문하려던 사람들이 '사적 생활의 문제' 혹은 '숨기고 싶은 생활' 등이 폭로된 나머지 인간적인 고통을 겪고 숨어버려야 했던 일들을 보면서 (사생활과 정치를 구분하는 프랑스도 아니고) 사적 생활에 유독 민감한 대한민국에서 참을 수 없는 욕망, 참을 수 없는 불온한 행위, 어쩔 수 없이 벌인 불의, 평생을 두고 자신을 괴롭힐 커다란 수치 등을 자신의 얼굴을 그대로 노출 시킨 채 말하거나 글로 쓸 수 있겠는가, 하는 이야기를 했다.

산문은 대체로 자신의 얼굴을 노출 시킨 채 쓰는 글이라 치명적인 약점을 그대로 쓰지는 못한다. 자기 검열을 거쳐 쓸 수 있을 만큼 걸러져서 쓰여지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에 대해 어떤 면에 대해서는 진실을 이야기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바로 그 지점에서 소설, 영화, 예술이라는 허구의 장치가 필요해진다.

내가 그 포스팅에 단 댓글을 그대로 옮겨오자면, 이렇다.  

"자기 검열을 거쳐야 하는 글은 그래서 진실로 진실에 이르지 못하지요. 그래서 소설이라는 허구가 필요한 것. 엊그제 어느 연구 결과를 봤는데, 역사 영화를 보여주면서 무엇무엇은 팩트이고 무엇무엇은 허구라고 알려줬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팩트 보다 허구에 열렬히 몰입하고 그것을 진실로 받아들이더라랍니다. 허구는 그냥 거짓말로 만든 어떤 것이 아니라 '인간의 진실을 근간으로 삼아 새롭게 구축한 어떤 구성물'인 것이죠. 우리는 거기에서 진실을 접하게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자신도 외면하고 싶은 진실을 보고 싶어 하는 한 허구로 구축된 산물은 없어지지 않을 거예요“

아주 오랜 옛날, 인류가 사피엔스로 진화하던 무렵, 무엇이 현생인류가 고생인류에서 변화를 겪게 했을까, 하는 질문에 대한 가설 중에 이런 내용이 있다. 

아마도 최초의 인류는 거짓말을 할 수 있는 인간이었을 것이다. 거짓말을 할 수 있는 능력. 거짓말이란 무엇인가. 진실을 왜곡하거나 회피하거나 새롭게 만들거나, 하는 것이다. 사냥에서 있었던 일, 채집할 때 본 것들, 식량을 나눠먹을 때 벌어지는 행동들, 그리고 더 나아가 다른 부족과 싸워야 할 때 매우 필요한 전략적 능력들. 이런 것들은 사실만 가지고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거짓말이란 다른 게 아니라 상상력의 산물인 것이다. 인류는 상상력이라는 새로운 능력을 얻고서야 이전의 인류와 갈라서게 된 것이다. 전략은 발전했을 것이고 뒤떨어진 인류를 죽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호모사피엔스는 동족을 죽이고 진화를 거듭한 현생인류가 되었다. 동족을 죽일 수 밖에 없는 이유도 그럴 듯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것이 허구를 정밀하게 구축하는 능력으로 발전했고, 가설을 세울 수 있게 되었으며 가설을 증명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과학적 능력도 발달하게 되었을 것이다. 

글로 이루어진 모든 부문, 즉 뉴스, 논문, 논설문, 리포트, 산문 (에세이), 소설 중에서 단 하나의 장르인 소설만이 허구를 이용하고 허용한다. 소설은 글쓴이의 사적 생활의 결과물이 아니다. 소설은 작가가 쓴 어떤 사람의 이야기이다. 작가의 실제 생활을 쓴 것이 아니다. 작가의 시선에 포착된, 시대적 인물, 문제적 인물 들 사이에서 벌어진 불가항력에 관한 허구적 구축의 산물이다. 

허구라는 인류의 거대한 산물은 결코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인류에게 허구를 구축하는 것은 숙명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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