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현희 소설가[글쓰기 팁] 진부함을 피하기 위한 문장 수업

‘하나의 낱말’ 이해하기


언어는 사물을 지칭한다. 하나의 낱말을 발음하면 그것에 대응하는 무엇인가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래서 얼핏 하나의 낱말이 하나의 사물이나 하나의 감정에 대응하여 생겨났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하나의 사물에 꼭 맞는 하나의 이름이 주어지지 않은 게 현실이다. 감정을 하나 생각해보자. 슬픔이라고 명명되어 있는 감정이 있다. 그러나 백 명의 사람이 있다면 백 가지 이상의 각각 다른 슬픔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각각 다른 감정의 결이라 해도 공통된 속성을 추려서 ‘슬픔’이라 하자, 라고 약속한 것이다. 사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니 낱말이나 어휘란 얼마간 추상화의 과정을 거치게 되어 있다.

그 이름을 정확히 불러야 그 삶이 우리에게 온다. 그것이 삶이라는 마술의 본질이라고 프란츠 카프카다 말했다시피 우리는 하나의 사물에 맞는 정확한 이름을 호명해야 한다. 그래야 내가 알고 있는 바로 그 사물이 내게로 올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알다시피 이것도 되고 저것도 되는 그런 사물이란 없다. ‘그’, ‘그녀’를 지칭하는 바로 그 언어 때문에 그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그이며 모든 그녀가 된다. 언어는 이렇게 오히려 바로 ‘그’에게서 멀어지게 만들기도 하는 것이다. 진부한 언어 자체가 때로 바로 그 대상에게 다가갈 수 없게 만드는 장벽이 되어버릴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는 수 없이 추상적인 낱말을 쪼개고 쪼개서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낱말을 사용해야 하고, 그것조차 분명히 지칭할 수 없으므로 보다 상세한 언어로 수식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발걸음’을 예로 들어보자. 


일상적인 언어로는 발걸음에 대해 간단하게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 


* 내 친구는 발걸음이 가벼워

* 그 사람은 봄날의 분위기에 맞게 가볍게 걸어 내게로 다가왔다.


일상 언어와 문어체 언어의 사용 예이다. 그러면 창작에는 어떤 언어가 쓰일까.


* 다른 모든 발자국 소리와 구별되는 발자국 소리를 나는 알게 되겠지. 다른 발자국 소리들은 나를 땅 밑으로 기어들어가게 만들 테지만 너의 발자국 소리는 땅 밑 굴에서 나를 밖으로 불러낼 거야. - 생텍쥐베리, 《어린 왕자


황지우의 시 <너를 기다리는 동안>을 통해 바로 ‘너여야만 하는 발걸음’에 대해 생각해보자.


너를 기다리는 동안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다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는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이 언어들을 검토해보면 각각의 언어는 정확도에서 차이가 난다. 모든 언어는 일정한 의미망을 갖추고 있고 그 의미망이 클수록 포괄적이고 의미망이 작을수록 구체적이고 개별적이다. 문장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이냐에 따라 알맞은 층위의 언어를 써야 할 것이다. 이렇게 어떤 단어와 어휘를 어떻게 사용했는가에 따라 문장은 좋은 문장과 진부한 문장으로 나뉜다.



바로 그 사물만의 언어는 어떻게 탄생하는가


진부함이란 바로 적확하게 쪼개진 언어가 아니라 뭉뚱그려진 언어, 수많은 ‘그’, ‘그녀’를 지칭하는 언어를 사용할 때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낱말이 가장 정확하게 쓰인 낱말인지를 숙고하여 돌아보지 않은, 즉 반성하지 않은 개념어나 관념어가 가장 많이 기피해야 할 낱말에 속한다. 문학 작품에서의 언어는 특히 오직 문자만을 사용해서 자기만의 세계를 드러내야 하므로 문장 하나하나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말도 들어보자.


* 아주 작은 사물에도 알려지지 않은 것이 담겨 있는 법이다. 그것을 발견하도록 하자. 불과 들판의 나무를 묘사하려면, 다른 불이나 다른 나무와 비슷하게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 앞에 서 있어야 한다.


세상의 모든 다른 나무나 불과 달리 보일 때까지 그 앞에서 면밀하게 관찰하라는 것이다. 하나의 나무나 하나의 꽃을 볼 때도 이렇게 해야 하는데 하나의 인간을 표현함에 있어서는 얼마나 오랫동안 꿈쩍 않고 지켜봐야 하는 것일까. 세상을 정확히 보려면 무엇보다 잘게 쪼개서 구체적으로, 명징하게 직시하고 기록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세상을 잘게 분석하고 그 분석한 것들이 서로 어떤 연관이 있는지 통찰하고 그것을 다시 종합하는 길고 긴 과정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