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현희 소설가표현의 자유를 추구하는 글쓰기 공동체

경계 없는 표현의 자유와 교류를 추구하는

글쓰기 공동체, 글로서기


울리히 벡은 ‘21세기 전 세계를 휩쓰는 메가트렌드는 개인화이다’라고 했다.

미래학자들 역시 미래의 성격은 ‘개인화’라고 한다.

개인화라니, 어려울 것 같지만 어려울 것도 없다. 조직이나 가족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한 개인의 주체적 삶을 지향하는 것이 추세라는 뜻이다.


나는 평생 혼자 살아볼 생각을 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하고 싶은 일을 기어코 해내는 추진력이나 낯선 일에 뛰어드는 모험심은 큰 편인데 겁이 많아서 혼자 어딘가를 여행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사람이었던 터라 내가 1인 가구로 살아가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삶은 당연하게도 예상하지 않았던 일들을 선물로 던져주었다. 몇 년 전에 아들이 독립하고 남편도 지방에 내려가야 할 일이 생겼다. 한꺼번에 일어난 일이라 아무도 없는 집에서 잠들어야 한다는 것이 두려웠다.

하지만 나는 책 읽기와 영화 보기, 글쓰기 작업에 쉽게 몰입하는 자질을 지니고 있었던지라 금세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말았다.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만으로도 하루가 모자랐다. 더하여 돌봐야 할 가족이 줄어드니 (강아지와 고양이가 있지만 사람 돌봄에 비하랴) 나 자신을 위한 시간이 덤으로 생긴 기분이었다. 삶은 정말 예상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흘러간다.


불운과 친해지는 법을 쓸 때 막연하게 상상했던 삶이 있었다. 대가족 제도가 무너진 현대에 모든 사람은 일생 중의 어느 한 시기는 혼자의 삶을 살아야 한다. 개인이 선택했든 선택하지 않았든 1인 가구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독립적이고 자존적인 삶의 방식을 선택한 개인이지만 모든 1인 가구가 다 섬처럼 고독하기를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싱글로 오십 년을 살아온 한 친구는 어느 날 죽도록 아팠는데 아무에게도 와달라는 말을 하지 못하고 사흘 동안 끙끙 앓았다고 했다. 나도 어느 날엔가는 등이 아파서 한밤중에 파스를 붙이려는데 제대로 붙일 수가 없었다. 혼자 있을 때 아프면 얼마나 힘들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1인 가구에 가장 급한 문제는 바로 서로 느슨하게 연결되는 네트워크라는 걸 경험하게 되었다. 하지만 또 그것뿐일까?


사람은 생존만을 위해 삶의 방식을 선택하지는 않는다. 그 이상의 것을 추구하는 것이 사람이다. 독립적이고 자존적인 생활 방식을 선택한 것은 삶의 지향이 명백해서일 것이다. 아무려면 아무나하고 연결하고 싶어 할까. 작가들은 페이스북에서도 인스타에서도 일상생활에서도 작가들과 더욱 잘 어울린다. 서로의 영역을 폭넓게 허용하고 그 교집합 안에서 자유롭게 각자의 의견과 느낌을 표현한다. 바로 일방적인 관계에서는 결코 이룰 수 없는 ‘표현의 자유’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서로의 사생활은 침범하지 않으면서 누구보다 깊은 이해와 따스함을 공유하는 관계를 그리워한다. 서로의 글을 공유하는 사이라면 그립다고 쓴 글을 읽으면 그 절절함을 이해해주고, 아프다고 쓰면 어떻게 얼마나 아픈지 나처럼 알아주고, 홀로 겪는 고통에 대해 진실을 말할 때 가만히 고개 끄덕이며 곁에 있어 줄 것이다. 더 나아가 내가 겪은 상처를 타인의 이름을 빌려 핍진하게 그릴 수 있으며, 내가 왜 지금의 내가 되었는지 수십 번 수백 번 자신에게 물을 때 글쓰기는 나를 위해 변호해 줄 것이다. 상상의 세계를 주유하고 세상에 내려선 자신을 반겨주는 사람들 속에서 표현의 자유는 화려하게 꽃을 피울 것이다.


같은 삶의 지향점을 지닌 사람들과 느슨한 연대를 꿈꾼다.